본문 바로가기
금융정보톡

국내 사회갈등과 소득이 늘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한국인

by IBK.Bank.Official 2011. 8. 22.


전 세계에게 가장 바람 잘 날 없는 나라가 아마 한국일 것이라는 글을 어느 곳에선가 본 기억이 납니다.

그 얘기를 바꿔놓고 보면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문제(사회갈등)가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살짝 들더군요. 

특히 최근에 들어서는 여러 경제현안과 더불어 흑백논리의 경연장이 되어버린 정치권 이슈, 반값 등록금 논쟁으로 대표되는 88만원 세대의 문제 등 이슈가 되는 사항들 하나하나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지 않은 사항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경제분야에서는 미국이 사상 초유의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여파(일명 소버린 쇼크)로 인해 국내 증시가 여러차례 출렁이는 모습이 보였고 심지어는 지난주 금요일이였던 8월19일 하루에 무려 65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한 주중에는 사상 초유의 은행들의 대출중단 사태(저희 IBK 기업은행은 정상적인 대출이 이루어 졌습니다.)가 일어나기도 했었죠.

※ 소버린 쇼크란?

정치권은 또 어떤가요? 옳고 그르고를 떠나 여당과 야당 모두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으르렁 거리기 바쁘고, 어제는 오세훈 현직 서울시장이 이번 무상급식 투표에 33.3%의 투표율을 넘지 못하거나 개표 시 득표율이 낮으면 사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모든걸 다 떠나, 이러한 모습들이 과연 정상적인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아마 한분도 안계실거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6월 22일, 파이낸셜 뉴스에서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우리 사회의 갈등 수위을 심각한 것으로 진단했다고 하며, 이는 연령과 직업, 이념을 초월해 범국민적 차원에서 갈등의 불안요소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고 인식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비용은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고, 우리나라 GDP의 27%인 300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쉽고, 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 비용들만 모두 우리나라를 위해 쓰일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ㅠㅠ) 이와는 약간 다른 내용이지만 비슷한 맥락의 내용을 가진 기사가 어제 올라왔습니다. 바로 우리나라가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정체된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에 빠졌다는 기사입니다. 

※ 이스털린의 역설이란?

 
어떻게 보면, 큰 공통점이 없는 것 같은 사회갈등 & 소득과 행복사이의 상관관계 사이에서 개인적으로는 의외로 큰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갈등은 이념, 빈부갈등, 현실적인 고충 등 여러 가지의 원인으로 인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심각한 사회갈등의 많은 부분이 생존의 위협이라는 극단적인 판단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결국 A가 아니면 B가 라는식의 흑백논리와 함께 여기서 밀리면 자신의 인생이(혹은 삶의 질이) 한 단계 떨어지는 소위 말해 낙오하는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승자 독식주의가 너무나 널리 퍼져 있다는 이야기이죠.)


결국 경제 최우선주의에 매몰되면서, 경제적으로 일정 선까지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 위치에 얶매이다보니 보편적 가치에 따른 행동은 할 수 없고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며 극단까지 몰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갈등은 더욱 증폭되는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아닌가 하는 생각인데요.  

이러한 안타까운 모습이 바로 그 누구의 모습도 아닌 바로 우리들 스스로의 자화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돈은 현실입니다. 아무리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있고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해서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배고픔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반면 돈이 근면에 대한 보상인 시절 또한 이미 아득한 예전 이야기가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만약 아니라고 하면, 사회 곳곳에서 정말 고생하면서도 근면하게 일하는 많은 분들이 부자가 되어야 하겠죠.)

얼마전 인상깊은 블로그 포스트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월급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가?' 란 글이였는데요. 이 글을 읽다보면 '분명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월급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려는 시도와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문구가 참으로 인상깊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모순을 직설적으로 꼬집은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최근에 읽은 인상깊었던 책 가운데 하나인 레베카 코스타'지금 경계선에서' 라는 책에서는 과거 여러 문명들이 붕괴하게 된 패턴을 설명하면서, 오늘날 인류 문명이 봉착한 여러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을 복잡성(complexity)에서 찾고 있습니다.

※ 위에서 언급된 복잡성은 사회전반에 걸친 여러 문제들과 갈등 그리고 인과관계를 의미


그리고, 그 해결책은 단 시간에 제시될 수 없겠지만 인간이 가진 통찰(insight)이라는 능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장단기 전략과 함께 여러 완화책들의 병행적 점진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죠. 반면, 가장 주의해야 할 요인으로는 '극단의 경제학', 즉 경제 우선주의을 꼽았습니다. 

모든 것을 이게 얼마나 돈이 되는지, 내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것인지, 즉 투자와 수익이라는 관점으로만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경제적 모델에 맞지 않는 가치는 모두 폐기돼 버리고, 작게는 공동체, 크게는 인류 모두에게 선(good)이 되는 생각과 행동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모든 것들의 문제의 시발점은 경제의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효율성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위에서 레베카 코스타가 밝힌 것과 같은 선(good)이 전제되어야 하고, 배려와 포용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어려울 뿐이죠.

흔히 경제에서는 효율성과 분배 모두 이루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 누구나 다 만족시키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와 같은데요. 이런 이율배반적인 문제를 2000년 노벨경제학상 수장자인 제임스 해크먼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육'을 통해 해결 할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의 링크를 클릭해서 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인터뷰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18세 청소년에게 직업교육을 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교육에 흥미가 없을 수도 있고 쉽게 기술을 익히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학습능력이 뒤진 청소년에게 정부가 무료 교육을 시킬 경우 더 우수한 학생들의 무상 학습 기회가 줄어드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거의 모든 경제 정책이 이런 식이다.

다만 유아교육에 대한 투자만은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로 두 문제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교육에 집중 투자하면 아이의 성취동기를 향상시키고 이는 기술 습득에 큰 도움을 준다. 이는 인종과 빈부격차 등과는 관련 없는 것으로 아이들의 생산성을 올릴 뿐 아니라 분배의 정의 실현에도 보탬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유아 무상교육을 주장한다거나 하는 정치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닌만큼 절대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려요. 단지 현재 상황에 맞는 여러 대안 가운데 이런 의견도 있다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회갈등을 봉합하고 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던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 할 수 있어야 하는 노력이 아닐까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 '공감'을 찾아내는 것이야 말로 그 어떤것 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겠죠.

더불어 앞서 말했던 레베카 코스타가 역설했다시피 여러 완화책들의 병행적 점진주의가 선행됨과 동시에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소유의 종말'을 비롯한 여러 유명 저서들을 집필한 제러미 리프킨'공감의 시대'라는 책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이러한 내용과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한명 한명이 이 내용들을 인식하고 보다 더 노력하는데 있어서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공감성향은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공감 충동은 사회적 힘이 분열로 동요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종종 무시당한다.

우리는 우리를 포함하는 보다 큰 공동체를 보살핌으로써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삼는다.

우리는 하나의 행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모두가 그 하나뿐인 행성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이라는 자각이 기정사실화 될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이전투구는 당장의 엄청난 위기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의 애국심은 세계에서도 유별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IMF 위기에서의 금 모으기 운동과 태안 석유 유출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전국민적인 모습은 세계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었죠. 이렇듯 무한한 잠재력있는 우리나라에서 너무나도 많은 사회적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고, 국민들은 행복하지 못하다고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해결책이 쉽게 나올수는 없겠지만, 이 글을 보시고 계신 여러분들 한분 한분 만이라도 이러한 사실들을 유념하셔서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 이 사회가 더욱 발전하고 국민들 모두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날이 올거라는 믿음을 가져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