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금융이야기] 선물거래와 베어링스 은행 파산사건, <로그 트레이더> 하



지난주 영화 속 금융 이야기에서는 선물 거래와 영국의 베어링스 은행 파산사건을 다룬 <로그 트레이더>를 소개했습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선물(先物) 거래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는데요. 선물 거래란 장래 일정시점에 수량, 규격, 품질 등이 표준화 되어 있는 특정 대상물을 계약 체결 시에 정한 가격인 선물가격으로 인도, 인수할 것을 약속하는 거래를 말합니다. 



오늘은 베어링스 은행을 하루 아침에 사라지게 만든 주인공인  ‘악마의 손’이라 불리는 닉 리슨의 선물 및 옵션 거래 딜러로서의 삶을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파멸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가는 남자

 


닉 리슨은 닛케이 225 지수 선물로 거래하곤 했는데요. 이것은 오사카 시장과 싱가폴 국제통화거래소(SIMEX) 두 군데서 동시에 취급을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격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닉은 이점을 이용했습니다. 

 

당시 선물 거래는 생소한 개념이었고, 현지인들로 구성된 팀은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거기다가 1990년대 초반의 SIMEX는 객장에서 매수자와 매도자가 서로 소리쳐 가면서 권리를 사고파는 형식이어서 실수로 잘못 처리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런 에러를 처리할 에러계좌를 개설하고 에러로 발생한 손실을 모아놓게 됩니다. 이 계좌가 유명한 88888 계좌입니다. 중국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8이 다섯 개나 모여있지만, 이것이 결국 불운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던 중 닉 리슨 팀의 여직원이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여직원이 낸 손실은 이전과 다른 큰 손실이었고, 이 사실이 드러나 쫓겨날 것을 두려워한 닉은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편법을 쓰게 됩니다.

 

“손해를 청산할 때까지 우리 계좌로 거래하고 일단 고객의 돈을 이용한 뒤 다음달 수익에서 갚으면 돼.”

“도박을 하자고요?”

“진정해 주식은 커다란 카지노나 마찬가지야.”

 

닉은 장부를 조작하여 월말 결산 때 누구도 88888 계좌의 손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으며, 대량의 가짜 주문을 내는 방식으로 가격을 떨어뜨린 뒤에 다시 매물을 싸게 사들이는 속임수를 동원하는 등 다양한 수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닉의 편법은 단기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뭐랬어! 나만 믿으라고 했지! 판돈은 계속 키우면 언젠가는 따게 되어 있어”

 

 

그러나 이 대담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1995년 1월 16일 종말을 맞게 됩니다. 1995년 1월 16일 고베 대지진으로 닛케이 주가가 폭락을 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닉은  5천만 파운드라는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만일 여기에서 그만두었다면 200년 전통의 은행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탈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닉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거래를 시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손실은 8억 6,000만 파운드까지 커져 갔고, 이는 베어링스 은행의 자기 자본의 두 배에 달하는 손실이었습니다.

 

1995년 2월 26일, 베어링스 은행을 살리고자 하는 각계 각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년이 넘는 전통의 베어링스 은행은 ING 그룹에 단돈 1달러에 매각이 되는 치욕을 맛보게 됩니다.

 

 

 

그대 마음 속에 파수꾼을 세우세요

 


각종 불법적인 거래와 편법, 속임수로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입히며 급기야 은행을 파산으로 몰고간 닉 리슨을 사람들은 ‘악마의 손’이라 불렀습니다. 과연 닉 리슨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악마였을까요?

 

“비밀 계좌에 거금을 숨겼다는 그런 소문이 나돌았지만, 난 개인의 이득을 위해 불법거래를 한 것이 아니었다.”

 

닉 리슨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개인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직원들의 실수를 보호하기 위해 이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상사들은 닉을 신뢰한 나머지 88888 계좌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닉의 이러한 행동을 저지할 내부 감사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도 닉의 부정(不淨)을 키웠다고 항변합니다. 그리고 SIMEX를 포함한 거래소들도 이익에 급급하다보니 닉의 과도한 거래에 대해 전혀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습니다. 이는 베어링스 파산 사건이 단순히 닉 리슨 한 명의 과오라고 이야기할 수 없게 만드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금융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나태입니다. 그리고 방관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한 곳에 모이게 되면 그 속에서 부정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새하얀 천에 얼룩들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최근 많은 금융 시스템은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지책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얼룩을 그나마 보기 좋은 무늬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날 정부에서는 금융감독원같은 기관을 설치하여 금융 시스템을 상시 감시하고 있으며, 금융기관들도 컴플라이언스 업무나 내부 감사 시스템, 금융소비자 보호 등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건전한 금융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닉 리슨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그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일을 하면서 방관과 무책임은 없는지, ‘나 하나쯤, 에이 아무도 모르겠지’ 하는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는지, 자신감이 넘쳐 편법이나 속임수를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기본을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일 그렇다면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당신의 정신은 언제나 강한 감시자에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자기 인생을 지켜보는 가장 무섭고 든든한 감시자에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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